姜優賢

 평범함에 형체가 있다면 필시 그런 모양일 것이다. 평범하다는 것은 보편적인 것, 즉 뛰어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것. 혹자는 평범해지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기실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삶이 보통의 것보다 안온하고 풍족하기에 그렇다. 진짜 평범한 것들에는 대개 금이 가 있다. 오래되거나 낡아 자연스레 생긴 것들도 있으나, 날 때부터 있던 결함이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타인에 의해 깨지는 경우는 더 허다했으며… 아무튼 긁힌 자국 하나 없이 깨끗한 것들이 더욱 드문 것이 원래 인간의 삶이다. 온전한 것들은 대부분 평범하지 않다. 불량품은 때로 평범하다. 강우현도 그랬다. 그 결함을 하자라고 부른다면 하자겠고, 조금 특이한 성정으로 본다면 타고난 성격이 되겠지. 질환으로 본다면 병에 이름을 붙일 수도 있었겠으나, 극심한 증상에 시달리지는 않아서 병원을 찾지 않고도 어떻게든 살아가긴 했다.

 그만큼 눈에 띄는 결핍은 아니었다. 어찌 보면 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애정 결핍. 그 원인은 아주 가혹하거나 잔학한 모습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신체적 폭력도, 폭언도 수반하지 않았다. 직접적인 타인과의 비교로 그를 깎아내리는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결여는 정말이지 다양한 형태를 그려내는 탓에, 그에게는 아마도 방치라는 이름이었다. 우현은 어느 날 깨닫는다. 집안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지만… 애정은 빛과도 같아서, 받는 양이 기준선 아래로 내려가면 결핍에 시달리게 된다. 일정량의 빛을 쬐는 것은 생명 유지의 필수 요건. 인간은 어둠 속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는 법이니까. 차차 줄어들다가 결국 외면할 수 없는 날에 직면한 것이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적당히 좋은 소리를 들었으나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그의 능력 외적인 부분에서, 그러니까 아무 수식어도 붙이지 않은 그 자신 자체로, 그저 그들의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랑은 턱없이 부족했다. 비교 대상이 없었다면 그렇게나 실감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에게는 너무나도 명백한 대상이 있었다. 가족의 중심은 늘 그의 누나였다. 부모의 모든 관심과 사랑은 그에게로 대부분이 쏠려 있었다. 나와 아주 다르게 보이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은, 그래서 그가 나보다 더 사랑받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나의 부족함을 증빙하는 일이다. 그가 내게 가까운 사이일수록 어쩌면 더. 가족 사이에 끼어있는 것은 곤욕이 되었다. 끝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욕망은 스스로를 철없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한다.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 더 바라는 것이 죄스러웠다. 욕심을 많이 내는 것 같아 덜어내려 노력했다. 기대의 크기는 실망의 무게에 비례하고, 그에게는 이미 버거울 정도의 낙심이 얹혀 있었으므로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적으로 기대를 버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사랑받고 싶다는 열망은, 타인의 부드러운 품이 언제나 저를 위해 열려 있기를 바라는 것은, 심지어는 나를 낳아준 이들, 어릴 적부터 심적으로 가장 가까이 있는 이들이 맹목적으로 자신을 위하고 좋아해 주기를 바라는 욕망은. 비단 그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이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기저에 품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의식에 영역에 있는 것을 의식적인 수준에서 조절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고 그렇기에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반복되는 실패는 좌절을 낳는다. 계속해서 멍청하게 애정을 원하고 뻔히 결과를 알았으면서도 실의에 빠지는 스스로를 비웃었다. 그래서 아이는 자신을 별로 좋아할 수 없었다. 그 자신조차도 그렇게 그를 포기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없다는 건 당연했지만, 부모에게도 자신이 일 순위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맞아들이기 힘겨웠다. 그건 한순간에 찾아온 찰나의 지각이 아니라, 서서히 체득한 삶의 진리와도 같았다. 그렇기에 머리가 깨지는 듯한 충격도 부서질 것 같은 고통도 손에 잡히는 대로 찢어버리고 싶은 분노도 그 자리에는 없었다. 그저 자신의 자리가 집에도 없다는 생각에 가끔 발밑이 불안해졌을 뿐이다.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다가 감감해져 생각하기를 관두었을 뿐이다. 알지도 못하는 것에 집착하고 싶지 않아 타인에게도 쉽게 마음을 주지 말자 생각했을 뿐이다.

 아이는 생각한다. 홀로 서야지. 그래야 무관심이 적대로 뒤바뀌었을 때도 나를 지킬 수 있을 테니까. 나를 사랑하지 않을 뿐인 사람들이 끝내 나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정말 나밖에 남지 않으니까…. 어쩌면 그것은 자신을 증명하는 과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아주 약간의 소망이 배어 있었을 지도 모르고. 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면, 할 줄 아는 것이 많고 똑똑한 아이가 되면, 그러면 누나보다 더 많은, 아니 적어도 비슷한 사랑을 받을 수 있을 수도 있다고. 그러나 그런 치기 어린 바람은 퇴색된 지 오래라 남은 것은 그저 이르게 부모에게서 독립해버린 아이. 혼자서도 타인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모든 것을 해내고자 하는 욕심.

 시간이 흐르며 누나에 대한 전폭적 지원의 이유를 자연스레 이해했다. 그 사유를 풀어 쓰자면 모순적이게도 우현에 대한 희미한 신뢰가 바탕에 있었다. 외부환경을 크게 타지 않고 꾸준하게 자라는 재목과, 기울이는 관심 하나하나 민감하게 빨아들여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나무가 있다고 했을 때. 전자는 우현이고 후자는 그의 누나였다. 부모는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으로 누나에게 더 큰 관심을 주기로 한 것이다. 애정도 그 길을 따랐을 뿐이다. 자신이라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뒤늦게 알게 되었다 해서 극적인 심경의 변화 따위가 있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겉으로 티는 내지 말았어야 했다거나, 사람은 식물이 아니라든가, 내지는 나 또한 더 큰 사랑이 필요했다는 처절한 외침같은 것들도 없었다. 그 즈음의 그에게는 이미 그런 것들이 중요치 않았기에. 그러니 당시 그가 느낀 감상을 일축하자면 그렇구나, 정도. 이걸 안다 해서 뭐가 달라지나. 그때의 그가 터득한 생존의 방식이란, 알고 통제하고 주도권을 쥘 것. 홀로 설 것. 함부로 기대하지 말 것. 쉽게 애정을 주지 말 것. 주어지는 것들도 마땅히 의심할 것.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선물처럼 주어지는 대가 없는 애정은 허상이니 믿지 말고, 그러나 사랑 없이는 도무지 살 수가 없는 법이니 애정의 따스한 빛깔을 연기할 것. 인간 불신과 애정결핍에 점철된 계산적이고 모순적인 제 심리에 불쑥 찾아드는 혐오는 습관이 되었다.

 그리 진창이 된 속을 하고서도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야, 사랑받지 못한 티를 내는 사람을 좋아하는 이들은 없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간절해 보이는 이보다 아쉬울 것 없다는 듯 구는 인간이 외려 타인의 관심을 쉽게 살 수 있다는 이유가 둘째였으며. 멀끔한 가면을 쓰는 것이 제 민낯을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익숙한 일로 느껴진다는 것이 셋째였다. 실에 매단 듯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려 자아내는 웃음이나 모나지 않게 둥글게 깎아낸 말씨가 어렵지 않았다. 대부분의 이들에게서 자신을 향한 호의를 읽어냈다. 필시 원하던 일이었을 테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기쁘지는 않았다. 단순한 호감 정도로는 오래 묵은 체증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갈망하는 것은 아마도 타인의 첫 번째가 되는 일. 그 누구의 비교 대상도 되지 아니할 만큼. 그 사람이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일. 아니 그보다는 이런 것들을 그만 원하게 되는 일. 애착이니 사랑이니 하는 진부한 문제에서 영영 해방되는 일. 중요한 것은 우위를 점하는 거다. 감정놀음은 부차적인 것이고, 종국에는 이익과 손해만이 남는다. 이 명제엔 어떤 결점도 없었을 텐데,

 그랬을 텐데. 어느 순간 그의 세상에 들어온 애는 정말 이상했다. 함부로 선을 넘는 사람을 경멸하는 우현을 다 안다는 듯, 멀리서 빙빙 돌면서 시선은 선 안에 못 박는다. 권주하는 강우현이 그간 체득해온 삶의 법칙을 모조리 깨부수었다. 자꾸만 바라는 것 없는 체한다. 주는 것이 있으면 그 값이나 보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 마련이다. 마음의 우물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 아니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꾸 퍼주지 않으면 쉽게 동이 났다. 그리고 이미 메말라 바닥을 드러낸 강우현의 삭막한 심장에, 권주하는 자꾸만 물을 붓는다. 물은 당연하게도 차오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권주하는 자꾸만 강우현을 본다. 집요한 관찰의 시선이 간지럽다. 숨길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는 듯 눈동자의 향방이 명백하다. 그건 정말 부담스럽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으나… 한편으로는 생각한다. 이런 끈질긴 눈길을 건넨 사람이 있던가? 애정은 관찰로부터, 관찰은 관심으로부터. 멀쩡해 보이게 다듬은 각피에 가벼이 값싼 흥미를 보이는 이들은 있었으나 그 이상의 내부를 탐내는 사람은 본 바가 없었다. 그러나 권주하의 눈빛은 언제나 외피를 탐하면서도 그에 그치지 않았다. 빛이 들지 않는 눈은 우주의 어두운 구석처럼 공허했으나, 그렇기에 더욱 그 깊이를 파악할 수 없을 만치 광막했다. 그 너른 공간에 차곡차곡 강우현의 모습을 기록해 쌓아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계속 강우현 자신도 모르는 그의 모습에서 무언가 포착해내려 하는 듯했다.

 의중 모를 관심이 두려워 마땅했겠으나 말리고 싶지가 않았다. 오싹한 떨림은 강우현의 텅 빈 틈을 메우는 자극이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확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알지만… 그 눈빛은 악의를 머금고 있지 않았다. 타의에 민감한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일부러 정제하지 않은 것처럼 날선 시선은 따스한 호의는 아니었으나 마구잡이로 생채기를 내지도 않았다. 그저 그에게서 찾아내고자 하는 보물이 있는 것처럼 욕심스러운 눈빛으로 빤히 쳐다보았다. 아니, 그 보물이 마치 그인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그에게 원하는 것이 마치 그 하나뿐인 것처럼. 보물이 자아를 가지고 내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듯, 그저 그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그건 그가 살아온 세계의 법칙에 반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쉽게 간과하는 사실 중 하나는, 대부분의 탄생은 기실 죽음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해체되는 세계의 파편 틈새로 그의 우주가 새로이 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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